스물 아홉살 인생


아홉, 다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했던 담임 선생님과 아침마다 엄마가 쨍쨍하게 땋아준 머리와 달랑이는 금귀걸이가 빛났던 단짝친구, 다른 학년 아이들이 점령한 운동장 구름사다리. 구구단을 빠르게 외우지 못해서 부끄러웠고 학교가 끝나도 집에서 날 맞이해주는 이가 없는 게 서운했다. 삶의 무게. 생각보다 세상은 재밌지 않다는 것, 가끔은 억울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 때 깨달았던 듯하다.
열아홉, 시시하고 짜릿했던 연애 후 처음으로 이별 노래에 눈물을 흘렸고, 밤 열 시까지 학교와 학원에서 그림을 그렸고, 새해 일출을 보러 혼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에 다녀왔다. 20대에 대한 거대하고 막연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다.
스물 아홉, 누구보다 열심히 젊음을 탕진하고 불필요한 고생을 사서하며 많은 거리에서 셀 수 없이 자주 눈물을 흘린 결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지구 반대편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도 제 나이를 헷갈려하는 어리숙한 어른이지만 올 여름이 오면 꼼짝없이 30대가 된다. 열아홉 때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희망찬 마음으로 새 계절의 문턱에 서있다.

"그러나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 모든 실존주의적 정의가 다 옳다손 치더라도, 과연 인생은 단지 죽음으로 가는 길목까지의 외롭고 허망한 여정일 뿐인가.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을 두르고,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고독과 허무를 짓씹으며 혼자서만 살아가야 할 뿐인가ㅡ천만에! 어차피 죽기 마련이라면, 사는 동안만큼은 사람답게 사는 편이 한결 낫다. 사람들이 서로 기대하고 믿고 사랑하고, 때로는 배신당하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증오하고, 또 때로는 지지고 볶고 우당탕퉁탕 싸움박질도 하고 사는 광경에 어느 것 하나 부질없는 짓거리라곤 없다. 이 모든 광경들은 저마다 소중한 인생의 한 장면들이며,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것도 잘 살가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잘 살기 위해, 사람은 결코 혼자 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마나 강해지는지, 나는 우리 동네 외팔이 하상사의 경우를 보고 일치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ㅡ 《아홉살 인생》中 '외팔이 하상사', 위기철, 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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