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한국과 독일을 제외하고, 일정 기간을 살아본 곳은 취리히가 처음이었다.
새벽 한 시, 베를린에서 1등석 ICE를 타고, 9시간 가까이를 달려 도착한 도시. 모든 게 새롭고도 익숙했던 도시. 아름답고 거대한 호수를 품은, 여름 내내 비가 많이 내렸던 도시. 한가득 이고 지고 가져간 캠코더는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매일 아침 마당에서 딴 과일로 아침을 해결했던, 혼자서 강물에 뛰어 들었던 도시.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샘물이 너무나 맛있었던 도시.
하늘 아주 맑았던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취리히 남쪽 Wädenswil(베디)로 나들이를 갔다. 약 40km 정도로 초승달처럼 기다란 취리히 호수의 정확히 반쯤 되는 곳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한 야외 수영장은 넓은 잔디 아래로 호숫가와 이어지는 아담한 모래사장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하늘빛과 같은 물빛을 바라보며 한참을 누워있다가 낮잠에 빠졌다. 또 다른 야외 수영장은 탈의실 바로 앞에 호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부유식 플랫폼이 있었다. 깊은 수심에 헤엄치느라 긴장했고, 그 위에 올랐을 때 크게 만족했다.
Zurich, July 2025